메인 컨텐츠

보도자료

  • 알림마당
  • 보도자료
  • [기고] 우리 가족 백구 이야기
  • 관리자
  • 2024-06-24
  • 조회 19
  • [ 충청매일]전원살이를 한 지도 벌써 12년째다. 전원생활의 장단점이야 적지 않지만, 개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애견인들에게는 특별한 점이기도 하다. 내가 애견인이 된 것은 20년이 넘기에 추억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어떤 개와의 인연은 이사오던 해 겨울에 운명처럼 시작됐다.

    여느 날처럼 입김을 호호거리며 아침 산책을 하는데, 산 쪽에서 컹컹거리는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갸웃해하다가 왠지 모를 예감에 이끌려 그곳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자 그 개는 나와 거리를 두면서 계속 짖어댔다. 아무래도 의아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니 풀숲 더미에 아직 눈도 못 뜨는 강아지 두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지 않은가!

    "어머나! 이를 어떡해…!". 뜻밖의 광경 앞에, 나는 외마디를 지르며 발을 동동거렸다. 어미 개가 이 겨울에 산속에서 홀로 몸을 푼 모양이었다.

    유기견인가? 싶다가 얼핏, 얼마 전 동네에 나돌던 소문 하나가 떠올랐다. 개장수에게 팔려 가던 개 한 마리가 우리 동네에서 목줄을 끊고 달아났다는 이야기. 그 개인 듯했다. 목에는 아직 끊긴 철삿줄도 남아있었다. 내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자니 어미 개는 냉큼 달려와 제 새끼들을 품으로 감싸고 눈치를 살핀다. 얼마나 굶었는지 갈비뼈가 앙상한 몸으로, 말라붙은 젖꼭지를 새끼들에게 물리고 있었다. 목줄까지 끊고 달아나던 그 결기는 어디로 가고, 눈과 귀도 축 늘어뜨린 채 마지막 모성애만 남은 듯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집으로 달려와 먹일 거리와 새끼들을 덮일 헝겊 쪼가리들을 챙겨 다시 거기로 갔다. 경계하는 어미에게 먹이로 안심시키고, 새끼들을 위한 둥지도 만들어 주었다. 발가숭이 강아지들은 코를 부비며 내 손끝을 핥아댔다. "아가, 몹시 배고프지? 쯧쯧…". 강아지를 안아 들며 나는 하나의 운명과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침마다 미역국을 끓여 바람난 여자처럼 집을 나서는 게 일과가 됐다. 어느 날은 숲 덩굴을 헤쳐가다가 얼굴을 다 긁힌 적도 있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자 어미 개의 털에도 윤기가 돌고 젖멍울도 사뭇 도톰해져 갔다. 나를 보면 꼬리치며 반기기까지 했다. 강아지들도 날로 토실토실해져 갔다.

    ‘얘들을 어쩌지? 이렇게 계속 밖에 두나?…’. 며칠을 고민하다가 수의사를 불러 구조하기로 했다. 포획하면서 약간의 실랑이를 치른 뒤, 어미 개도 순순히 우리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간단한 검진과 예방주사를 맞히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가족들과는 상의도 없이 개를 들이던 날, 가족들은 뜨악해했지만 이내 한마음으로 맞아주었다. ‘백구’라는 이름도 붙였다. 견종은 몰라도 씻기고 보니 털 색깔이 눈처럼 하얘서였다.

    그 후 전원생활은 내게는 우아한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 테라스에 앉아 모닝커피를 기울이는 여유로움 대신, 개를 건사하는 책임이 일상의 태반이 되었다. 수시로 앞치마를 두르고 똥을 치워야 하는 것은 물론, 개의 건강을 위해 때로 목줄을 풀어주는 일, 산책하기 등, 새로운 일과가 늘어갔다. 그뿐이랴. 백구를 들인 후 새끼들도 점점 늘고 동네 유기견들까지 우리 집 울타리를 넘나든다. 낮에는 백구와 그 새끼들만 집에 남기에, 백구가 여러 번 새끼를 낳을 때까지 언제 어떤 녀석과 연애를 했는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개를 기르는 일로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어려운 점보다 얻는 것이 몇 배는 많다. 백구는 어느덧 손자까지 있는 할머니가 되어 우리 곁에 있다. 처음 만나던 날 어린 나이에 두 아이 엄마로 생업전선을 뛰던 자신을 떠올리게 만들던 백구는, 이제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된 나를 돌아보게도 한다.

    사람으로 치면 백수가 넘을 나이가 된 백구. 요즘 눈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잘 듣지 못한다. 밥까지 떠먹여 줘야 한다. 하늘나라로 보낼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나는 아직 백구를 떠날 보낼 마음의 준비는 못하고 있다. 그를 홀연히 보낼 날, 슬픔의 크기가 어떨는지 아직 짐작도 되지 않는다. 다만 가족을 잃는 아픔 못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가족으로 함께 나눈 추억들이 집안 곳곳에 자욱하기 때문이다.


    충북노인회 경로당광역지원센터장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충청매일(https://www.ccdn.co.kr)
목록보기